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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양한 ‘여성의 몸’ 관련 책들. 일러스트 이영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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몸
올해 출판계 유망주는 ‘여성의 몸’ 다룬 것
여성의 몸 과학적으로 들여다본 책
다양한 운동 섭렵하면서 체력 키우는 법 등
대리모 문제 다룬 서적도 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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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양한 ‘여성의 몸’ 관련 책들. 일러스트 이영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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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년 출판계의 블루칩을 예측하자면 ‘여자의 몸’이 아닐까 한다. 2019년에 이미 그 흐름이 시작되었는데, 여성의 몸을 이야기하는 방식이 두 가지 면에서 크게 달라졌다. 첫 번째, ‘아름다움의 추구’가 화두가 아니다. 두 번째, 금기를 남겨두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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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리도, 임신도, 있는 그대로 살피기
금기를 남겨두지 않는다는 말은, 여성의 몸에서 일어나는 일을 제대로 알아보자는 데서 시작한다. 노르웨이 오슬로에서 활동하는 의사 니나 브로크만과 엘렌 스퇴켄 달의 <질의응답>은 여성 성기에 관련된 모든 것을 다룬다. 생리통, 피임, 자궁 관련 질환에 대해 두루 다루는 이 책은 ‘내 몸을 알자’는 가장 기본적인 궁금증에서 출발한다. 생리를 시작하고 통증이 있거나 심리적으로 어려움을 겪는다고 해서 10대 때부터 산부인과를 찾기 쉽지 않은 한국에서는 특히 중요해 보인다. 책을 다 읽고 꼭 기억해야 하는 교훈? 산부인과에 꾸준히, 자주 방문해 전문가의 상담을 받자.
류지원 미래아이산부인과의원 의사가 쓴 <내 친구가 산부인과 의사라면 이렇게 물어볼 텐데>는 실제 환자가 묻고 의사인 저자가 답한, 일종의 ‘자주 묻는 질문’ 모음집이다. 체중이 갑자기 늘거나 줄면서 생리불순이 되었다면? 성관계 후 피가 나거나 냉이 많아졌다면? 산부인과에서 진단이 내려지는 각종 질병과 예방 백신에 관련한 안내 역시 만날 수 있다. <산부인과 의사가 알려주는 V존의 모든 것>도 유사한 콘셉트다. 우아영의 <아기 말고 내 몸이 궁금해서>는 임신을 임신부 중심의 몸 이야기로 되돌려놓고자 시도하는 책. 과학 전문 기자가 유산, 난임을 시작으로 잠과 체온, 튼 살, 두통 등의 경험과 이유를 다룬다.
10대 여성을 위한 몸 이야기도 있다. 오스트레일리아에서 청소년의 건강과 성생활에 대한 칼럼을 연재했던 멜리사 캉과 방송인 유미 스타인스의 <생리를 시작한 너에게>는 부모님에게 묻기 어렵거나 부모도 다 알지 못하는 생리 이야기를 다룬다. 일러스트레이터 이다의 <걸스 토크>는 사춘기 여성 청소년들의 2차 성징, 외모 콤플렉스, 성욕과 자위, 우울 장애 등을 일러스트로 전한다. 가르치기보다는 본인의 경험을 중심으로 얘기하기 때문에 성인 독자도 공감할 대목이 많은데, 10대 여성이 한국에서 성장하며 겪는 어려움을 때로는 코믹하게, 때로는 절박하게 담아냈다.
여성의 경험을 이야기하기, 특히 몸에 대해 말하기의 중요성은 여성이 토로하는 고통이 실재하는 것이 아닌 ‘히스테리’로 오인된 역사가 길다는 데도 있다. <엄청나게 시끄럽고 지독하게 위태로운 나의 자궁>의 애비 노먼은 대학교 재학 중 극심한 복통으로 병원에 간다. 1차 수술 이후에도 나아지지 않자 의료진은 통증이 노먼의 머릿속에서 비롯되었다고 진단하기에 이른다. 결국 노먼은 몸의 문제 해결을 위해 직접 공부를 시작하고, 의료계가 여성의 통증 호소를 무시해 온 길고 긴 역사가 있음을 알게 된다. 자궁내막증과 싸우는 동시에 의료계의 편견과도 싸워야 했던 경험을 담은 에세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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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이어트 NO 체력 키우는 운동 YES
여성의 몸에 관련한 출판물의 더욱 중요한 흐름은 ‘탈코르셋’이라는 조류의 영향권 하에서 본격적으로 힘을 발휘한다. 이전에 여성의 몸을 출판계에서 다루는 가장 흔한 방식은 ‘다이어트’였다. 아주 오랫동안, 운동이든 요리를 권할 때는 ‘살이 빠진다’로 효능을 설명했다. 하지만 최근 출간된 신한슬의 <살 빼려고 운동하는 거 아닌데요>라는 책 제목처럼, 몸은 마음을 위해, 공부와 생업을 위해, 원하는 모든 것을 쟁취하기 위해 튼튼해야 하는 무엇이 되었다. 건강이라는 관점에서 보면 44치수로 대표되는 마른 몸을 선망하는 일을 멈추고, 걷고 달리기에 좋은 단단한 발목의 쓰임을 기뻐해야 한다. 대상으로 존재하는 대신 주체로 활동하고자 하는 여성들의 바람은 ‘있는 그대로의 여성의 몸이 환대받는 장소’를 적극적으로 탐색하고 몸을 자유롭게 쓰는 법을 익히고자 한다. 이 주제에서 한국 저자들의 책이 압도적으로 힘을 발휘하는 이유는 이러한 한국 페미니즘의 최근 흐름과 관련이 깊다.
지난해에 이미 ‘여성과 체력/운동’ 분야의 주목할 만한 책이 두 권 있었다. 이영미의 <마녀체력>과 김혼비의 <우아하고 호쾌한 여자 축구>다. <마녀체력>의 부제는 ‘마흔, 여자가 체력을 키워야 할 때’, <우아하고 호쾌한 여자 축구>의 부제는 ‘한팀이 된 여자들, 피치에 서다’인데, 전자는 베스트셀러를 여럿 만들어낸 편집자(즉, 몸 쓰기와 유난히 관련 없이 살며 주로 책상에 앉아 일하는 사람)가 뒤늦게 운동을 시작해 철인3종 경기를 완주한 이야기를 담았고 후자는 한국에서 남성스포츠라는 인식이 강했던 축구를 여성들이 얼마나 재미있고 호기심 넘치게 뛰고 있는지를 담았다.
올해 출간된 운동 관련 책들은 ‘여자가 운동을 시작하면 보이는 것들’을 담고 있다. 운동을 왜 하지 않게 되었을까를 생각해보면, 초등학교 고학년 때 100m 달리기를 하면 남학생들이 저 멀리서 구경하며 “누구 가슴이 크네! 흔들리네” 하는 말을 듣고 의기소침해져 옷을 붙들고 달렸던 일부터 시작하지 않던가. 독립잡지 <계간홀로>를 발행하는 이진송의 <오늘은 운동하러 가야 하는데>는 세상 모든 운동을 약간씩 맛보고 포기하기를 반복하면서도 끈질기게 운동에 정붙이는 이야기를 담았다. 헬스클럽, 요가, 커브스, 수영, 승마, 스노보드, 댄스, 스쿼시, 복싱, 아쿠아로빅, 배드민턴, 복싱, 필라테스로 이어지는 운동 목록을 보고 있자면, 한국에서 유행한 온갖 운동의 역사가 스쳐 지나간다. 이 책의 백미는 ‘다정도 체력’. “마법의 단어 ‘스트레스’는 몸과 마음을 갉아먹는다. 체력이 떨어지면 사소한 실수에도 지나치게 엄격해지고, 가족에게 짜증이 난다. ‘다정도 체력’이라는 말이 괜히 나온 게 아니다. 그렇게 점점 실감하는 것이다. 아, 이러다 나는 결국 짓무르고 터지겠구나. 일터가 나를 빨아먹는 대로 내버려뒀다가는 애먼 사람에게 화풀이하겠구나. 인성 때문에 운동한다는 후배의 말은 이런 맥락이다.” 양민영의 <운동하는 여자>는 운동과 관련한 페미니즘 이슈를 꼼꼼히 다룬다. 영화, 만화 등에서 ‘운동하는 여자’를 어떻게 소비하는지, 세계 최고 랭킹의 스포츠 스타조차 임신과 출산 이후 ‘경력단절’을 경험하는 현실이 어떠한지를 비롯해 운동하는 공간에서 여자가 안전할 수 있는가를 질문하는 글을 만날 수 있다.
주짓수, 태권도, 복싱 등 격투기 수련을 이어가며 태보 에어로빅, 크로스핏 레벨1 트레이너 자격증을 보유한 운동코치 박은지의 <여자는 체력>은 트레이너 보는 눈 키우는 법, 왜 고령자라고 해도 걷기만이 아니라 다양한 운동을 해야 하는가를 오랫동안 다양한 운동을 접해온 전문가의 시선으로 풀어낸다. 자기방어 훈련 지도를 오랫동안 해 온 저자답게 관련 내용을 ‘부록’으로 싣기도 했다. 질환이나 장애가 있는 사람을 위한 운동 센터, 통증을 예방하는 자세, 폼롤러를 이용한 마사지법에 대한 소개도 믿을만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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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성의 몸이 겪는 전쟁
앞에 소개한 책들은 몸에 활력을 더하는 방법을 궁리한다면, 이 책들은 여성의 몸이 겪는 전쟁을 다룬다. <대리모 같은 소리>의 레나트 클라인은 ‘지금 당장 대리모를 중단하라’는 국제적 캠페인의 원년 연대자로서, 페미니스트 학자 겸 활동가로 활약하고 있다. 클라인은 ‘대리모 산업’에 대해 고발하고, 여성의 몸을 도구화하기를 멈추라고 요구한다. 봄날의 <길 하나 건너면 벼랑 끝>은 탈성매매 여성의 경험담을 담았다. 한국 성매매 산업의 구조가 얼마나 촘촘하게 한번 발을 들인 여성을 옭아매는지 적어 내려갔다. <사건>은 프랑스 소설가 아니 에르노가 60살에 발표한 20대 시절 낙태의 경험담이다. 섹스는 여성과 남성의 일이지만, 임신은 여성만의 굴레가 된다. 임신과 중절이 여성의 이후 삶을 좌우할 낙인이 된다는 사실을 깨달아가는 이 기록은 그렇게 긴 시간이 흐른 뒤에 쓰였음에도 생생하고 절절하다.
이다혜(<씨네21> 기자·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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