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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19.12.05 09:48 수정 : 2019.12.05 20:49

김보통의 해 봤습니다

논산 육군훈련소에 갔습니다.

교육 마지막 주차인 훈련병들을 상대로 강연을 하러 간 것입니다. 앞서 채용정보 회사인 잡코리아를 창업하고 1000억에 매각한 김화수 전 대표가 먼저 발표를 했습니다. 훌륭한 강의를 듣고 있자니 마음이 쪼그라들었습니다. 저 스스로가 너무 변변찮아 도망치고 싶다는 생각도 했습니다. 하지만 그럴 수는 없었습니다. 고민 끝에 저는 결단을 내렸습니다. 딱히 이렇다 할 성공은 하지 못했으니, 실패에 대해 이야기를 하기로 결정한 것입니다.

“여러분, 저는 권투선수였습니다.”

저의 뜬금없는 고백에 훈련병들은 ‘조금 의외인데?’ 하는 반응을 보였습니다. “전국대회에서는 헤비급 동메달을 땄습니다.” 그제야 “우와~” 하는 소리가 나왔습니다. 내친김에 “어떠세요? 제가 좀 대단해 보이시나요?”라고 묻자 “예, 그렇습니다”라는 소리가 강당에 울려 퍼졌습니다. “제가 동메달을 딸 수 있었던 이유는 무엇이었을까요?” 저의 물음에 장내는 조용해졌습니다. 어느새 모두의 시선이 저를 주목하고 있었습니다. 저는 말했습니다. “대회 당일 시합장에 가보니 헤비급에 출전한 선수가 단 세 명뿐이었기 때문입니다.” 그러자 장내는 순식간에 웃음바다가 됐습니다.

“어떠세요? 제가 아직도 대단해 보이시나요?”

저의 물음에 장병들은 웃으며 고개를 가로저었습니다. “운 좋게 세 명이 나온 체급에 출전해 참가상으로 동메달을 받은 사람이라 별 볼 일 없어 보이시죠?” 장병들은 대답 없이 웃기만 했습니다. “하지만 아이러니하게도 제가 동메달을 받을 수 있었던 이유가 바로 그것입니다. 어쨌든 저는 체육관에 등록해 훈련을 하고, 대회에 참가했습니다. 그 결과 좋은 운을 만날 수 있었고, 동메달을 목에 걸었습니다. 그런 저를 보고 사람들은 그게 뭐가 대단하냐고 알고 보니 별거 아니었다며 비웃지만 상관없습니다. 어찌 됐든 저는 시도했고, 동메달을 땄다는 사실은 변함없으니까요.” 웃음기가 사라진 장병들은 조용히 집중하고 있었습니다.

“물론 실패가 두려울 겁니다. 그래서 애당초 시도하지 않는 경우가 많을 겁니다. 하지만 정말 다행스럽게도 나의 실패는 다른 사람에게 보이지 않습니다. 만일 제가 헤비급에 출전한 사람이 세 명뿐이라는 사실을 굳이 말하지 않았으면 여러분은 그 사실을 알 리가 없는 것처럼요. 그러니 여러분. 그저 시도하시고 또 시도하세요. 그렇게 백번을 시도해 아흔일곱 번 을 실패하고 운 좋게 세 번을 성공하십시오. 어차피 남들에게 보이는 것은 단 세 번의 승리뿐이니까요.”

사실 이렇게 멋있게 말하지는 못했습니다. 하지만 훈련병들은 나름 진지하게 제 이야기에 귀를 기울였습니다. 유명하지도 않은 만화가라서 아주 조그만 성과들을 크게 부풀리기보단, 조금 부끄럽고 우스꽝스럽더라도 솔직한 이야기를 하는 것이 나을 거라 생각했습니다. 앉아서 듣고 있던 김화수 전 대표가 듣기에도 나쁘지 않았던 것인지 “언제부터 그렇게 실패를 두려워하지 않는 사람이 된 겁니까?”라고 묻기도 했습니다. 뭐라고 답했는지는 모르겠습니다. 애당초 이길 것을 기대하고 싸워본 적이 없어서 그렇기도 했습니다. 늘 요행만을 꾀해왔습니다.

지금쯤 그 훈련병들은 자대 생활을 시작했을 것입니다. 남은 군 생활 동안 끊임없는 시도 속에 실패에 무던해지고, 성공에 익숙해질 수 있길 기도해 봅니다.

김보통(만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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